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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스크랩] 인연

by 자유야 2012.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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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설화

박 규 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 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는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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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설화에 부쳐

 

김 영숙


사랑이 서럽기야 했겠습니까
다 영글지 못한 인연으로 만나져
내도록 눈썹 밑에 달라붙은 채
눈을 감으나 뜨나 발그림 그리고 섰는
미련이 그리움인 까닭입니다
내 전생에 어찌 살아
만나는 인연마다 골이 패이고
설익은 목탁소리에 속 울음을 묻는 것인지
아무런 답을 들려 보낼 수 없었던
업장이 서러웠던 까닭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번민은 아닙니다
안고 싶은 그 사랑을 밀어내며
힘 풀리어 매달리던 무거운 두 팔
승속을 흐르는 일주문 달빛에 젖어
좀체 떨어지지 않던 한 쪽 다리입니다
정작 서러운 것은, 법당을 서성이다
열린 법당문을 빠져나가던 경종소리 쫓아
인연하나 변변히 맺지도 못하면서
변변하지도 못한 인연하나 못 놓아
산문을 되돌리던 복 없는 영혼이었습니다

 

출처 : 한성24
글쓴이 : 최수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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