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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

[스크랩] 법정스님의 일기일회 5- 운문사 법문과 효봉스님과의 인연 , 스님의 구도의 서(書) 소개 등

by 자유야 2016. 3. 19.

☘수행자는 늙지 않는다- 운문 도량에서
 2005년 10월 20일 운문사 초청법회

 조금 길지만 참으로 좋은 법문입니다.


경상북도 청도군 호거산에 위치한 운문사(雲門寺)는 560년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고찰이다. 일연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삼국유사> 를 저술한 곳이며, 하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의 부인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하나를 꼽으라고 하자 “운문사에서 보낸 하룻밤”이라고 답했을 만큼 아름다운 절이다.


비구니스님들을 양성하는 승가대학으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스님은 2001년 5월에 이어 두 번째로 특별 초청 법문을 했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잘 익은 감들을 매단 청도지방의 감나무들과, 운문사 경내의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 그리고 늙은 소나무가 스님을 맞았다. 스님은 강원도에서 내려와 오랜만에 불일암에서 이틀을 지낸 뒤 저녁에 이곳에 도착했으며, 객실에서 하룻밤 묵고 아침에 이 법문을 설했다.

지나가는 말로 한번 들르겠다고 했는데, 말이 씨가 되어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에 여러 학인(절의 강원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스님)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 기쁩니다. 운문사 도량도 참 좋습니다. 법당이 좋은 것이 아니라 이곳 마당에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와 반송, 그리고 비로전의 부처님이 참 좋습니다.
현대에 조성된 불상들은 너무 세련되고 엄숙합니다. 판에 박힌 불상들입니다. 조선시대에 불교가 박해를 받았을 때 조성된 이곳 비로전 부처님은, 어느 시골의 논둑이나 밭둑에서 일하다 온 할아버지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다른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인데, 저는 처음 운문사에 와서 이 비로전 불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개 불상들은 석굴암 본존불을 비롯해서 한결같이 가부좌를 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운문사의 비로전 부처님은 좌선을 오래 하셔서 발이 저린지, 오른발을 앞으로 내놓은 모습입니다.


운문사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도량을 다시 세운 곳입니다. 여러 스님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고마운 도량입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절이 아닌 여기 이 운문 도량에 와서 배우게 된 인연을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가끔 저는 이렇게 여러 스님들을 만나면, 이 험난한 세상에서 같은 출가 수행자로 만난 인연을 고맙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다른 많은 길과 직업이 있는데 왜 우리가 가족을 떠나 집을 등지고 절에 찾아왔는가?
우리가 몇 생을 그렇게 익혔기 때문에, 우리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청정한 본심에서 문득 한 생각이 일어나 자기 갈 길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 소식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 많은 길을 두고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가?

이런 의문이 출가 수행자인 우리의 공통된 화두가 되어야 합니다. 출가수행은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 터전을 굳게 다지고 주추를 튼튼하게 놓아야 제대로 된 건물이 들어서서 탈이 없듯, 출가수행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인 시절은 평생 수행을 하는 데 기초를 다지는 기간입니다. 시작이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 어떤 수행자가 될 것인가 스스로의 길을 마련하는 때입니다. 또 출가한 지 오래되면 안이해져서 직업적인 중처럼 때가 묻습니다. 직업적인 중이 되지 않으려면 이 기간 동안 청정한 출가의 뜻을 지니고, 매 순간 출가 수행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위가 과연 출가 수행자다운 것인지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

각자 한번 되돌아보십시오. 저 자신도 늘 되돌아봅니다.
‘내가 운문사에 와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내가 오두막에 살고 있는 것을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과연 나는 이곳에서 떳떳하고 올바르게 지내고 있는가?’
저는 늘 잊지 않습니다. 내가 과연 안팎으로 출가 수행자답게 살고 있는가? 마음씀이 수행자로서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가? 또 내가 무엇을 위해 이 길에 들어섰는가?
구도자는 이와 같은 자기반성으로 순간순간 깨어 있어야 합니다. 불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늘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본래의 자기로서 늘 깨어 있는 것입니다.


선방에 가면 신발 벗는 곳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표찰이 있습니다.

신발 벗는 섬돌에서 자기 발 뿌리를 살피라는 뜻입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과연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출가 수행자로서 어떤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 돌아보라는 교훈입니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 자신의 현존재를 늘 살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절에 있는 주련, 현판, 표지들이 다 법문입니다. 세월의 두께와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이 도량에서 가장 오래 살아있는 존재는 저 은행나무와 반송입니다. 저 나무들은 이곳에 처음 심어지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도량에 사는 많은 스님들은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도량에 살면서 수백 년 된 정정한 나무가 옛사람과 우리를 비교하며 늘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들 자신이 저렇듯 정정하고 당당한 기상을 지닌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운문사에 있는 저 오래된 소나무를 보면 참 좋습니다. 아주 늠름하고 기상이 좋습니다.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살고 온갖 풍상을 겪었으면서도 의연합니다. 또 저쪽에 두 그루 서 있는 은행나무처럼 도량에 저렇게 큰 나무들이 서 있는 것을 보면 저는 환희심이 일어납니다.


나무가 사람보다 훨씬 낫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변덕스럽습니까?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나무들은 의연합니다.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저 나무들을 선지식으로 삼으십시오. 진짜 말없는 선지식은 저런 나무들, 바위, 시냇물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 좋은 대상이면 그것을 닮아야 합니다. 은행나무가 우연히 마당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에 올 수많은 중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저렇게 서 있는 것입니다.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나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제대로 중노릇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안팎으로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먼 길을 가려면 그 길에 대해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평생 이 길을 가려면 굳은 확신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각자 원을 세워야 합니다. 원의 힘으로써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각자 원이 있겠지만 수행자로서 청정한 원을 세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원과 행이 일치해야 제자리로 들어섭니다. 원만 있고 행이 없는 것은 공허하고 관념적입니다.


그런데 행은 어디에 있는가? 순간순간에 있습니다. 내가 원을 세웠다면 매 순간 그 원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행입니다. 수행은 닦는 행입니다.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어떤 관념적인 데 걸려 있으면 세월이 금방 다 지나갑니다. 원이 없는 분들은 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저 소나무 앞에서 새로운 원을 세우십시오.


수행자는 기상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이 길은 순탄한 길이 아닙니다.

제가 절에 들어와서 절밥을 먹은 지 50년이 되었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것이 잠깐입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내가 그동안 무엇을 했지?’하는 생각이 듭니다.
절밥만 먹고 시주의 은혜에 대한 보답은 몇 분의 일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을 충만하게 보내지 않으면 늙어서 허망해집니다. 늙은 것을 한탄만 하게 됩니다.
수행자에겐 늙음이 없습니다. 늘 그 자리입니다.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늙음과 죽음이 있지만, 수행자에는 늙음이 없습니다. 늘 깨어 있기 때문에 세월이 비켜 갑니다.
간절한 소망과 원, 행이 없기 때문에 세월이 그곳에 앙금을 이루어서 안주하는 것이지, 늘 살아있는 존재에게는 세월이 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늘 초심(初心), 시작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초심이 중요합니다. 집 나왔을 때의 첫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세월이 붙지 않습니다.


제가 잘 아는 사람 중에 불교에 관심이 많은 연극인 한 분이 있습니다. 가끔 잊어버릴 만하면 연하장을 보내오는데 한번은 연하장에서 “스님에게는 세월이 비켜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법문입니다. 세월에 놀아나지 말고 때 묻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속의 흐름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

이 길은 순탄한 길이 아닙니다. 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지나온 50년을 돌아보면 장애물경주를 한 것처럼 용케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를 언짢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 생애에서 어떤 비약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질병이든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이든, 그것을 비켜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딛고 일어서면 연륜이 쌓입니다. 안으로 매듭이 맺힙니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가령 이 도량에 와서도 처음에는 보기 싫은 사람이 한둘은 있습니다. 서로 뜻도 안 맞고, 자기 자신도 그렇고, 저쪽에서도 보기 싫은 대상입니다. 그것이 중생계입니다. 수행자는 그런 것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에서 훌훌 벗어나기 위해 출가하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비본질적인 집에서 지속적으로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자기 몸뚱이만 집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출가가 아닙니다. 수시로 비본질적인 세계에서 본질적인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 출가입니다. 그렇게 되면 밉고 고운 것이 없습니다. 누구든 진리의 형제로서, 한 도량에 있는 형제로서, 고마운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한눈팔지 마십시오. 수행자는 한눈 팔면 안 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길에서 벗어난 줄 알았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세속적인 인연에 얽히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하고 물어야 합니다. ‘나는 왜 출가를 했는가? 과연 내가 출가 수행자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가?’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이것을 잊고 끌려가서 세속적인 쾌락을 구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출가 수행자의 길이 아닙니다.


일단 자기가 선택한 길, 누가 오라고도 하지 않은, 자기 스스로 내딛은 출가 수행자의 길에서 삶을 완성해야 합니다. 한 가지 일로 한 생애를 마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 은행나무와 같은 당당한 기상을 지녀야 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어려운 장애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출가를 했는가?’늘 이런 원초적인 물음을 통해서 다시 또다시 탈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가 수행자는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삶의 원칙을 지녀야 합니다. 그런 원칙이 없으면 흐트러집니다. 먹는 일, 입는 일, 그 밖의 물건을 갖는 일도 소욕지족(小欲知足-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앎)의 거울에 비춰 보아야 합니다.
단순함과 간소함의 체로 걸러야 합니다. 가진 것이 적어야 생각이 덜 흐트러집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생각이 분산되어서 본래의 자기 생각을 잃어버립니다. 물욕은 근원적인 생각을 잊게 만듭니다.


모든 것이 넘쳐 나는 풍요로운 세상에서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시줏물이 들어오는 대로 다 갖게 되면 소유한 것들에 매몰되어 큰 장애가 됩니다.
강원에 있을 때는 그런 반연(絆緣-얽히어 맺어지는 인연)이 없으니 지금부터 자기가 가져야 할 것,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리는 연습을 하십시오.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도 좋지만 소화제가 필요한 정도로 많이 먹지는 마십시오. 저는 해인사에서 1950년대 중반부터 12년을 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입니다. 그때는 늘 배가 고팠습니다. 아침에 죽 먹고 점심에 밥 먹고, 찬도 짜기로 소문난 운문사의 반찬보다 더 짰습니다.
당시 총무였던 돌아가신 스님은 김장할 때, 싱거우면 많이 먹으니까 조금만 먹게 하려고 소금을 많이 넣게 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폐를 앓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폐를 앓은 자국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기운이 없고 맥이 빠지고 자고 일어나면 식은땀이 났습니다. 그런 상태로 수행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주에서 모처럼 찰밥과 미역국, 당면 등의 대중공양(大衆供養-불교 신도가 여러 스님에게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 일)이 왔습니다. 요즘처럼 맛있는 과일은 상상도 할 수 없던 때입니다.
당시의 제 방이 전망은 좋은데 정낭과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대중공양이 들어온 그날은 요란하게 정낭 쪽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을 잔뜩 먹었으니, 그것을 어떻게 소화시키겠습니까?
음식만이 아닙니다. 지식과 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그릇에 유익한 것만 받아들여야지, 지나치면 주객이 바뀝니다.  수행자로서 진짜 필요하고 본질적인 것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버려야 합니다.
불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수행자의 정신을 어지럽힙니다. 모든 것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는 투철한 자기질서와 의지가 없으면 그런 것들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먼 길을 가려면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짐이 무거우면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어제 류시화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라다크 같은 높은 지대에서 트레킹을 할 때는 고산병이 생길 수 있으므로 미리 대비해서, 물도 배낭 가득 지고 가서 지속적으로 마셔야만 한답니다.
그런데 그 물이 무거우니까 정작 얼마 못 가서 한 병씩 버려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극히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많이 지니면 짐만 무거워져 우리의 발걸음을 주저앉힙니다. 먼 길은 가려면 짐이 가벼워야 하듯이, 한평생 청정한 수행자의 길을 가려면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중노릇하면서 가장 귀찮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철 따라 옷가지를 챙기는 일이 매우 귀찮습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분명하기 때문에 여름 삼베옷 챙기고, 겨울옷 챙기고, 어디 두었는지 몰라서 다 꺼내 찾아야 하는 등, 무척 귀찮습니다.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우리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지니기에는 짐이 되는 것들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학인 시절부터 행해야 합니다. 여기는 배우러 온 곳이기 때문에 그런 것부터 배워서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홀가분합니다.
저는 마음이 흐트러지려고 하거나 이것저것 물건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때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법문을 떠올립니다. 모든 선사들이 본래무일물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습니다. 또 우리가 한 생각 일으켜서 절에 들어올 때 재산을 가지고 오지는 않습니다. 빈 몸으로 옵니다. 살 만큼 살다가 인연이 다해서 갈 때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결국 무일물은 물건과 관계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래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수행자에게는 내 집이 없습니다. 모두가 시주가 지어 놓은 집에서 삽니다. 다른 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건물을 아무개 스님이 지었다고 표기를 합니다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아무개 스님 때 지은 것이지 아무개 스님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수행자는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합니다.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속물이 됩니다.

우리가 속물이 되기 위해 출가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나이 들수록 자기 관리를 엄격히 하십시오, 누가 곁에서 충고를 해 주지 않으므로, 스스로 자기 삶을 철저히 단속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출가 수행자의 본분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누가 와서 어떤 부탁을 할 때 자기의 역량이 되면 도와줄 수 있겠지만, 그럴 능력이 없고 자기 그릇이 한계를 느낀다면 스스로 자제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관리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자기 관리를 위해서는 인정사정 두지 마십시오. 인정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인정과 자비심은 다릅니다.


우리들의 청정한 본성이 곧 자비심입니다. 자비심은 우연히 생겨나지 않습니다. 참선 잘하고 경전 잘 암송한다고 해서 자비심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남과의 관계 속에서 자비심이 길러집니다.


자비심과 보리심을 기르는 것은 수행자에게는 본질적인 길이며 핵심입니다.

보리심은 진리를 깨달아 그 깨달음으로 모든 존재를 구하겠다는 원입니다.
불교에서는 흔히 지나가는 짐승들을 보면 “발보리심 하라.”고 합니다

[여시축생발보리심(如是畜生發菩堤心,

 ‘너는 비록 짐승이지만 보리심을 일으키라.’고 가르치는 말]


옛날 어느 스님에게서 들었는데, 하루는 지나가는 소에게
“발보리심 하라.”고 말하니까 그 소가 스님을 쳐다보면서 “음메-”하는데, 마치 “너는?”하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크게 자책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보리심을 발했을 때, 남에게 보리심을 발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전해집니다. 보리심과 자비심은 그토록 따뜻한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전해집니다. 이기심은 냉혹하고 차디찬 것입니다. 이기심은 자기 자신도 견디지 못하고 남도 차갑게 만들지만, 자비심은 자기 자신도 훈훈하고 이웃도 따뜻하게 만듭니다.


전에도 한번 제가 운문사에 와서 객실에서 잤습니다. 그 방은 보일러 장치가 매우 잘되어 있습니다. 차가운 곳을 좋아하는 사람은 차가운 부분,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은 따뜻한 부분에서 잘 수 있는, 방바닥의 차갑고 따뜻함이 확실하게 나눠진 방입니다.
저는 저 자신이 차디차기 때문에 따뜻한 곳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따뜻한 부분에서 잤는데, 그 방에서 자면서 ‘이 방이 법문을 하는 구나. 중생들의 근기에 맞도록 냉난방을 나누어 놓았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우스갯소리가 아닙니다. 무엇이든 건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깊이 생각하면 그곳에 다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한테 이롭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배우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불교에서 지혜를 우선시하고 자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지혜와 자비는 둘이 아닙니다. 청정한 한 마음에서 나오는 가닥입니다. 굳이 차례를 이야기하자면 자비심에서 지혜가 싹틉니다. 자비가 없는 지혜는 지극히 메마른 것입니다.
한국 불교는 깨달음을 우선시하면서도 깨달음의 행을 할 줄 모릅니다. 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지, 깨달음의 행 없이 정상에 이를 수 없습니다. 끝없는 자비의 행을 통해 지혜가 싹트고, 지혜와 자비가 하나가 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의 길입니다.


끝으로 제가 의지하고 늘 수지독송(受持讀誦- 경전이나 책을 항상 잊지 않고 지니며 소리 내어 읽음)하며 곁에 두고 스승으로 삼는 서적을 몇 권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擎文)>입니다. 제가 중이 된지 반세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가끔 <초발심자경문>을 읽습니다. 절에 들어와 처음 은사스님(효봉 스님)앞에 꿇어 앉아 그 전날 배운 것을 외워 가며 익혔던 글입니다.
단지 글만 풀이하고 해석한 것이 아니라, 옛 수행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행했는가 하는 것을 그 글을 통해 낱낱이 배울 수 있었기에, 늘 그 가르침이 저한테 남아 있습니다.
백지 상태로 처음 절에 와서 배우는 교훈이 <초발심자경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씩 <초발심자경문>을 읽으면 새롭습니다. 지금도 7월 보름 하안거 해제일이 되면 제가 계를 받은 그날로 돌아가 예불 끝에 꼭 <초발심자경문>을 독송합니다.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고,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지니기 위함입니다. 또 제가 거처하는 오두막 불단에도 <초발심자경문>을 늘 모시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서산 스님이 경전과 조사 어록들을 보다가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뽑아 놓은 <선가귀감>을 처음 보았습니다. 어떤 노장 스님이 그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눈이 번쩍 뜨이고 신심이 나는 책이었습니다. 환희심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즉시 아랫동네로 뛰어 내려가 공책 한 권을 사다가, 깊은 밤 잠자는 시간에 지대방(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방, 이부자리, 옷 또는 승려가 행장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지대 따위를 두는 곳)에 들어가 호롱불을 켜고 그 책을 한 줄 한 줄 공책에 베껴 적었습니다.
절반쯤 베꼈을 무렵, 지대방에 불이 켜져 있으니까 그 노장 스님이 문을 열고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선사귀감>을 베끼고 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좋으면 스님이 하시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시오’라는 것은 그때말로 ‘가지시오’라는 표현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5 .16 혁명이 나던 해, 제가 그것을 번역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해인사 시절 그것을 번역했습니다. 그 뒤로 몇 번 손을 대다가 얼마 전 <깨달음의 거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지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이 주가 되어 도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거울>도 현각 스님이 영역을 해서 전시 중입니다. 머지않아 미국에서 출간되면 서양인들이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이 <숫타니파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경전의 체계를 갖추기 전, 부처님이 초기 경단에서 말씀하신 것을 엮어 놓은 근본 경전입니다. <아함경>이 생기기 이전의 경전이기 때문에 표현이 매우 소박합니다. 어떤 법문을 들으면 마치 부처님의 육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초기 교단의 수행자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또 초기 교단의 수행자들에게 부처님은 어떤 가르침을 폈는가, 그 당시에는 어떻게 수행을 했는가 하는 것을 <숫타니파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전도 좋아해서 제가 번역을 몇 차례 했는데, 최근에 새롭게 장정을 해서 출간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장로게(長老偈)>입니다. <장로게>는 초기 수행자들의 수행담을 이야기한 책입니다. <장로게>가 있고 <장로니게(長老尼偈)>가 있습니다. 이 책도 저의 구도의 서(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도겐(道元)선사가 사석에서 펼친 가르침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분의 시자(어른스님을 모시고 시중드는 사람)가 고운 에조(孤雲에奘)스님인데, 도겐 선사보다 나이가 두 살 위입니다. 다른 교단에 있다가 도겐 선사의 가르침에 감화를 받아 시자가 되었습니다.
이분이 도겐 선사가 그때그때 사석에서 제자들을 위해 법문한 것을 기록해서<정법안정수문기(正法眼臧隨聞記)>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정법안장(正法眼臧)>은 도겐 선사 자신이 기록한 법문입니다.
이 <정법안장>에 ‘행지(行持)’편이 있는데, 수행자가 지녀야 할 행위에 대해, 옛 조사들부터 중국 선종사에 나오는 분들이 어떻게 수행했고 어떻게 교화했는가 하는 것이 실려 있습니다.
<정법안장>중에서도 저는 이 행지 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길상사 주지실을 만들 때 무슨 이름을 붙일까 하다가 ‘행지실’이라고 한 것입니다. 주지를 하려면 바른 행을 지니라는 뜻에서입니다.


저는 구도의 서(書)로 이 다섯 권의 책에 늘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학인스님들도 저마다 구도의 서(書)로써 중노릇하는데 든든한 배경 삼기를 바랍니다. 제 잔소리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혹시 제가 얘기한 것에 대해서 의문이 있으면 10여분 동안 질문을 하십시오. 단, 억지로 짜내지 마십시오.


학인1-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법정스님-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제가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일찍부터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로우의 <월든>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참 좋았습니다.
제가 영향을 받은 게 마하트마 간디와 소로우의 간소한 삶일 것입니다.

간소하게 사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삶입니다. 복잡한 것은 비본질적입니다. 단순하고 간소해야 합니다.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에 가서 제가 오두막을 지었으면 어디에 지었을까 하고 월든을 한 바퀴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소로우의 오두막 터가 동남 방향이었습니다. 그곳이 전망도 좋고 약간 언덕이었습니다.


학인2- 은사스님에 대한 일화가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법정스님- 처음 중이 되려고 마음먹었을 때 짐을 싸서 서울에 갔습니다. 그때 오대산에서 진리를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모집한다는 독특한 소식을 듣고 그곳엘 가려고 했는데, 그해 겨울눈이 많이 내려서 교통이 두절되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선학원에 큰스님이 다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스님이 자신의 은사스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분이 효봉 스님입니다. 그래서 가서 인사를 올리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는데, 스님께서는 되었다고 하시면서 다른 스님에게 제 머리를 깎아주라고 시키셨습니다.
조실방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머리 깎고 승복을 하나 얻어 입고 갔더니 깜짝 놀라시며 구참(묵은 중)같다고 하셨습니다. 머리를 깎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로 거리를 걸어서 한 바퀴 돌았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 있을 때입니다. 처음이라 무엇이든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때는 구례에서 장을 봐다 먹었습니다. 버스가 다니지 않을 때라 트럭이 장날마다 들어왔습니다.
모래 먼지 뒤집어쓰고 장에 가면 온몸이 얼어 있었습니다. 장터에 가면 여기저기 움막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습니다. 빈속에 팥죽을 한 그릇 사 먹으면 몸이 풀리곤 했습니다. 그곳에 또 서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 글씨>라는 책을 사 왔습니다.
낮에는 좌선하고 밤에는 지대방에 불을 켜고 호손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 절반쯤 읽었을 때인데, 은사스님께서 하루는 지대방 문을 열어 보시더니 무엇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책을 읽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런 책 읽으면 중노릇 못한다며 당장 불태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엌에 가서 단박에 태웠습니다. 좋은 교훈입니다. 만약 적당히 꾸짖고 말았다면 처음 절에 들어온 사람이 그런 책을 계속 읽었을 것입니다. 그 뒤로 강원 가기 전까지는 일절 세속의 책을 접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 스님께서 전을 좋아해서 공양 때 호박전을 부치려고 아랫동네에 애호박을 구하러 사제와 함께 갔습니다. 갔다가 빨리 와야 하는데 이 친구가 그 집 주인과 이야기를 하느라 밥 지을 시간이 한 10분 늦어졌습니다. 서둘러서 절에 올라갔는데, 은사스님께서 오늘은 단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는 오전 한 끼 먹고 오후 불식할 때인데 그렇게 단식을 하게 되어 나이 드신 스님께 무척 죄송스러웠습니다. 출가 수행자의 시간관념이 그 순간 가슴 깊이 씨앗이 되어 뿌려졌습니다. 그것이 늘 가슴에 박혀서, 언제나 시간을 잘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이제 10분이 지났으니 마치겠습니다.

출처 : 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 무주선원
글쓴이 : dalm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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